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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의 자기 인식, 거울이 답일까?

data-find-blog1 2025. 2. 3. 19:02

1. 자기 인식(Self-recognition)은 동물에게 가능한가? – 거울 테스트의 철학적 의미

‘자기 인식(Self-recognition)’이란,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고 자신과 외부 환경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생후 18~24개월 무렵부터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며, 이는 자아 개념 형성의 시작으로 여겨집니다. 이처럼 자기 인식은 단순한 지각 능력을 넘어 ‘나는 나다’라는 개념적 사고의 출발점입니다.

이를 과학적으로 탐구하기 위한 대표적인 실험이 **거울 테스트(Mirror Test)**입니다. 1970년 심리학자 고든 갤럽(Gordon Gallup Jr.)은 침팬지에게 마취 상태에서 얼굴에 붉은 점을 그려 넣고, 회복 후 거울을 보여주었습니다. 침팬지가 거울을 보고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만지는 행동을 보이자, 그는 이를 ‘자기 인식의 증거’로 해석했습니다. 이후 오랑우탄, 돌고래, 코끼리, 까치 등 일부 동물들이 이 실험을 통과하면서 ‘자기 인식 능력을 가진 고등동물’로 분류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실험 결과가 모든 동물의 인지 능력을 정확히 반영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과 유인원이 시각 중심의 동물이라면, 개, 고양이, 설치류 등은 후각이나 청각에 더 의존합니다. 따라서 거울 테스트는 시각 인지를 기반으로 한 실험이며, 감각 구조가 다른 동물들에게는 부적절한 평가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비판이 존재합니다. 결국 동물의 자기 인식을 이해하려면, 그 종이 사용하는 주 감각 체계를 고려한 다양한 실험 설계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거울 테스트는 ‘표식(mark)’이라는 인위적인 조작을 전제로 하기에, 동물이 자신의 신체에 대한 구체적인 지각 능력이 없는 경우에는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곧 자기 인식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실험 설계의 제한으로 인해 관찰되지 않는 것일 수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실험 실패를 ‘능력의 부재’로 해석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강아지의 자기 인식, 거울이 답일까?

2. 강아지와 거울 – 시각 기반 테스트의 맹점

강아지를 대상으로 한 거울 테스트는 대부분 실패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울 앞에 선 강아지는 처음에는 흥미롭게 반응하지만, 곧 무관심해지거나 거울 속 자신을 타 개체로 착각해 짖거나 꼬리를 흔드는 행동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반응은 많은 연구자들로 하여금 “강아지는 자기 인식 능력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실험은 기본적으로 시각 정보의 이해와 해석을 전제로 합니다. 강아지는 인간처럼 시각적으로 세상을 인식하지 않으며, 특히 색을 구분하는 능력이 약하고, 공간지각 또한 사람과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더욱이 강아지는 자신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학습하는 것보다, 자신의 냄새나 위치 감각을 통해 자기 존재를 파악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따라서 시각 자극만을 기반으로 한 실험에서 강아지가 반응하지 않는다고 해서 자기 인식 능력이 결여됐다고 단정하긴 어렵습니다.

거울 테스트에서 보이는 반응은 오히려 강아지가 후각이나 청각이 결여된 대상에 대해 혼란스러움을 느낀다는 증거일 수도 있습니다. 거울 속 ‘다른 개’는 냄새도 없고 소리도 없기 때문에, 강아지에게는 일종의 ‘무의미한 영상’에 불과할 가능성이 큽니다. 시각 중심의 인식 구조를 강아지에게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인지적 오해의 소지를 내포하고 있는 셈입니다.

또한, 거울이라는 인공적인 도구 자체가 강아지에게 친숙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거울과 익숙하게 지내며 자기를 관찰하는 법을 배웁니다. 그러나 강아지는 거울에 대한 학습 기회가 거의 없으며, 이를 통해 자신을 인식할 만한 경험적 기반도 부족합니다. 따라서 시각 테스트 자체가 문화적 학습과도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3. 강아지는 자기 냄새를 구별할 수 있는가? – 후각 기반 자기 인식 실험

강아지는 시각보다 후각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동물입니다. 인간에게는 낯선 개의 얼굴을 구분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만, 강아지에게는 그 개가 풍기는 냄새가 정체성과 소속을 판별하는 기준입니다. 이러한 점에 착안한 연구자들은 시각이 아닌 후각을 기반으로 한 ‘자기 인식 실험’을 설계하게 됩니다.

대표적인 예로, 동물행동학자 마르크 베코프(Marc Bekoff)의 연구가 있습니다. 그는 2017년, 강아지들에게 자신의 소변과 다른 개의 소변을 제시하고, 각각에 대한 반응 시간을 측정했습니다. 흥미로운 결과는 강아지들이 자신의 냄새에 대해서는 빠르게 지나쳤지만, 다른 개의 냄새에 대해서는 탐색 행동을 오래 지속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강아지가 자기 냄새를 ‘이미 아는 정보’로 인식하고, 낯선 냄새에 더 집중하는 경향을 보여주는 결과로 해석됩니다.

또한, 연구팀은 동일한 강아지의 소변에 인위적인 변형(예: 화학적 성분 추가)을 가했을 때, 강아지들이 변화된 자신의 냄새에 더 높은 관심을 보인다는 사실도 밝혀냈습니다. 이는 강아지가 자신의 기본적인 냄새를 기억하고 있으며, 그것이 변형되었을 때 이를 감지할 수 있다는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단순한 구별 능력을 넘어,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라는 자각이 존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처럼 후각 기반의 인식은 단순히 자극에 대한 반응을 넘어, 정보의 비교와 자기 정체성에 대한 인지를 포함합니다. 이는 인지과학에서 말하는 '자기 참조성(self-referential processing)'의 초보적 형태일 수 있으며, 동물의 인지 진화 수준을 재평가하는 데 의미 있는 단서가 됩니다.

4. 강아지의 자기 인식 – 냄새를 통한 존재의 자각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거울 테스트는 여전히 동물 자기 인식 연구의 대표 실험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실험의 한계와 단점도 점차 드러나고 있습니다. 특히 강아지처럼 **후각 중심의 종(species)**에게는 거울이라는 시각 자극이 인지적으로 무의미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거울을 보고 자신의 모습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자기 인식이 없다고 결론짓는 것은 비약일 수 있습니다.

강아지는 후각을 통해 자기 존재를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냄새가 변했을 때 감지하고 관심을 보이는 행동은, 단순한 자극 반응을 넘어 자기 상태에 대한 자각이 존재함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능력은 고도로 추상적인 자아 개념과는 다르지만, 감각 기반의 ‘자기와 타자의 구분’이라는 측면에서 자기 인식의 한 형태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강아지는 인간과 같은 방식으로 거울 속 자신을 인식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존재를 감각적으로 이해하고 구분하는 능력은 존재합니다. 이는 단지 인식 방식의 차이일 뿐, 능력의 유무가 아닙니다. 앞으로의 동물 인지 과학은 인간 중심의 기준을 넘어, 동물의 고유한 감각과 인지 구조를 이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동물의 내면 세계를 보다 정밀하게 이해하고, 그들의 지각과 사고를 존중하는 사회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이해는 단지 학문적 호기심에 그치지 않습니다. 반려견을 키우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강아지가 세상을 어떻게 지각하고 있으며,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은 더욱 깊은 교감과 신뢰를 형성하는 열쇠가 됩니다. 이는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감각의 언어를 이해하려는 인간의 노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