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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강아지, 진짜 팬 – AI로 탄생한 반려견 셀럽의 탄생과 한계

data-find-blog1 2025. 4. 16. 10:00

1. 생성형 AI의 반려견 캐릭터 – 존재하지 않아도 인기 있는 이유

최근 몇 년 사이, Midjourney, DALL · E, Stable Diffusion 등 고도화된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이 대중적으로 확산되면서, 기존의 이미지 생성 영역을 넘어 문화 콘텐츠 산업 전반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특히 SNS에서는 이 기술을 활용해 만들어진 ‘가상의 반려견 캐릭터 계정’들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이들 계정은 실제 존재하는 반려견이 아닌, 알고리즘이 만든 완벽한 외모와 매끄러운 색감, 귀여운 표정을 가진 이미지들을 주 콘텐츠로 삼는다. 하지만 그 인기는 실존 반려견 계정을 능가할 정도다. 이 계정들에는 수천, 수만 명의 팔로워가 몰리고, 하루에도 수십 개의 댓글이 달리며,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강아지에게 감정 이입을 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계정들이 단순히 시각적 즐거움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의 브랜드처럼 성장한다는 점이다. 팔로워들은 캐릭터의 성격, 좋아하는 음식, 친구와의 이야기 등 스토리를 함께 소비하며, 점점 더 그 강아지가 마치 현실 속에 존재하는 듯한 인식을 갖게 된다. 일부 계정은 이미 반려동물용품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있으며, 디지털 굿즈나 이모티콘 판매로 확장되기도 한다. 실제로 ‘@pet.bot.puppy’와 같은 계정은 AI로 생성된 반려견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수만 명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으며, 꾸준한 팬덤 활동을 통해 디지털 인플루언서로 기능하고 있다.

이처럼 실존하지 않는 존재가 '셀럽'이 되고, 상업적 가치까지 창출하는 상황은, 콘텐츠 소비 방식의 급격한 변화와 디지털 세계에서의 감정 이입 구조를 다시금 성찰하게 만든다. 우리는 이 현상을 통해, 사람들의 정서적 교감이 반드시 실재하는 대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목격한다. 가상의 이미지, 잘 꾸며진 서사, 그리고 알고리즘이 설계한 감성적 접근이 결합되면, 현실보다 더 쉽게 소비되고, 더 빨리 팬덤이 형성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반려견이라는 존재는 생명체가 아닌, ‘감정을 투사할 수 있는 오브제’로 전환되며, 디지털 환경 속에서 감정과 존재의 경계가 얼마나 유동적인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지금, '존재하지 않지만 사랑받는 개'를 통해, 기술이 감정마저 재현하고 재구성하는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마주하고 있다.

 

2. 진정성과 정체성의 붕괴 – 우리는 누구를 사랑하는가

SNS에서 반려견 콘텐츠는 단순한 귀여움의 소비를 넘어선 정서적 공감의 장이다. 보호자와 강아지의 일상은 관찰자에게 위로와 감동을 주며, 실재하는 생명체가 보여주는 고유의 몸짓과 행동은 진정성 있는 반응을 유도한다. 예를 들어, 반려견이 병을 이겨내거나, 노령견이 마지막 생일을 맞이하는 장면은 보는 이의 감정선을 강하게 자극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과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게 만든다. 이러한 콘텐츠는 보호자와 반려견 사이의 관계, 그리고 그것을 함께 공유하는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의미를 가진다. 콘텐츠는 곧 관계이며, 관계는 정체성의 증거가 된다.

하지만 AI가 만든 반려견 계정은 이러한 정체성과 진정성이 결여된 상태로 작동한다. 그들은 보호자도 없고, 과거도 없으며, 지금의 상황조차 알고리즘이 정한 서사에 의해 구성된다. 감정이입을 유도하는 듯한 사진과 캡션도 실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인기 있는 패턴과 알고리즘이 학습한 ‘감동 코드’에 기반한다. 팬들은 여전히 ‘사랑스럽다’, ‘위로가 된다’고 반응하지만, 이 감정은 철저하게 기획된 픽셀과 키워드, 알고리즘에 의해 생성된 ‘가상 감정’에 불과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보고 감동하고 있는가? 실재가 없는 존재와의 감정 교류는 과연 진짜 교류라고 할 수 있는가?

더 나아가, 이 현상은 인간이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지 못하는 문제가 아니라, 굳이 그 구분이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하게 된 문화적 전환을 보여준다. 콘텐츠 소비는 ‘실제’보다는 ‘믿고 싶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정체성의 실체는 증명보다 서사에 의해 강화된다. 결국 ‘존재’ 자체보다도 ‘보는 방식’이 중요해지는 이 시대의 SNS는, 진정성이 아닌 서사의 매끄러움, 감정의 기획 가능성, 인물의 ‘가공성’을 더 가치 있는 요소로 전환시킨다. 이는 단지 가상의 반려견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SNS 사용자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모두가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며 캐릭터를 구성하고, 진정성보다는 '콘텐츠 성'을 우선시하는 플랫폼 위에서 살아간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시 질문하게 된다.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은 그 존재 자체인가, 아니면 그것이 보여주는 ‘설계된 감정’인가? 진정성은 실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믿을 만하게 ‘연출된 것’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처럼 진정성과 정체성의 붕괴는 단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감정의 소비 방식 자체가 달라졌음을 의미하며, 그 결과로써 ‘가짜 강아지’도 얼마든지 진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가짜 강아지, 진짜 팬 – AI로 탄생한 반려견 셀럽의 탄생과 한계

3. 초상권과 저작권의 사각지대 –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더 위험한

가상의 반려견 캐릭터는 실존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전통적으로 적용해 왔던 법적 개념들—예컨대 초상권, 인격권, 사생활권—의 보호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이 ‘존재하지 않음’이야말로 오히려 더 큰 법적·윤리적 위험 요소가 된다. 실제 동물의 이미지를 무단 도용했을 경우에는 보호자의 항의나 법적 대응이 가능하지만, AI가 생성한 이미지의 경우 그 출처가 명확하지 않으며, 유사한 형태의 캐릭터가 무수히 생성될 수 있다. 이는 누군가의 반려견과 외형이 매우 유사한 AI 캐릭터가 대중의 인기를 끌더라도, 명백한 침해로 보기 어려운 회색지대를 만들어낸다. 또한, 이러한 이미지들은 여러 생성형 AI 플랫폼이 학습한 기존의 인터넷 자료에서 파생되었기 때문에, 이미지 제작자와 데이터 제공자 간의 권리관계 역시 모호하다.

더욱 복잡한 문제는 이러한 캐릭터들이 단순한 ‘이미지’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서사와 상품을 통해 상업적 수익을 창출한다는 점에서 시작된다. 예컨대, AI로 생성된 가상의 반려견이 마치 실제 강아지인 것처럼 팔로워와 상호작용하고, 팬덤을 형성한 뒤, 브랜드 협업을 통해 제품을 홍보하거나 굿즈를 판매하게 되면, 이는 명백히 경제 활동의 일환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서 ‘누가 소유자인가’, ‘창작자는 누구인가’, ‘이 수익의 정당한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가’에 대한 기준은 사실상 부재한 상태다. 생성형 AI를 이용한 콘텐츠는 원본이 없고, 창작자도 명확하지 않으며, 알고리즘이 일방적으로 만든 결과물로 간주하기 때문에 기존의 저작권법이 이를 온전히 포괄하지 못한다. 콘텐츠 산업 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5년 안에 AI 기반 캐릭터 상표권 분쟁이 급증할 것이라는 예측도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이러한 법적 사각지대는 윤리적 감수성의 약화로도 이어질 수 있다. 인간은 실제 존재하는 반려동물의 고통이나 생명에 대해 책임을 느끼지만, 가상의 존재에 대해서는 그러한 책임감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 그렇기에 일부 기업이나 제작자는 감정 소비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식으로 스토리를 조작하거나, 특정 감정 자극 이미지를 지속해서 반복하며, 팬들을 자극하는 알고리즘적 전략을 구사하기도 한다. 이 과정은 단지 마케팅의 문제를 넘어서, 감정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콘텐츠 소비 구조의 윤리적 한계를 드러낸다. 특히 반려동물 콘텐츠는 그 감정 소비의 강도가 높고, 소비자 역시 그것이 ‘실제 강아지’라는 전제를 가지고 접근하기 때문에, 윤리적 왜곡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초상권이나 저작권이라는 법적 개념은, 존재하는 생명체나 인간 창작자의 권리를 전제로 설계된 체계다. 하지만 가상의 반려견 캐릭터는 이 두 범주에 모두 속하지 않기 때문에, 권리를 주장할 주체도 없고, 침해를 고발할 실체도 없다. 오히려 이 ‘경계 없음’이 디지털 콘텐츠 시장에서 무한히 재생산되고, 무책임하게 유통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낸다.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자유롭고, 자유롭기 때문에 더욱 위험한 것—이것이 AI 반려견 셀럽 계정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또 다른 메시지다.

 

4. 소비의 윤리와 상업화의 경계 – 팬인가, 소비자인가

가상의 반려견 셀럽이 상품을 홍보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상황은 단순히 기술 진보의 부산물이 아니다. 이는 디지털 시대의 ‘감정 소비 구조’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과거에는 사람이나 동물이라는 실존하는 대상을 중심으로 팬덤이 형성되었지만, 오늘날의 소비자는 실존 여부보다 콘텐츠의 매끄러움과 감정의 몰입 가능성에 더욱 반응한다. 즉, 존재하지 않아도, 그 존재를 믿고 싶은 만큼 감정을 이입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는 감정이 진정성의 산물이 아니라, 상업적 기획과 알고리즘의 산물로 대체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더욱이 이러한 감정의 소비는 플랫폼 알고리즘과 마케팅 전략에 의해 정밀하게 설계되어 있다. '좋아요' 수, 댓글 반응, 저장률 등은 콘텐츠의 가치로 환산되고, 그 결과 가상의 반려견 계정은 실제 인플루언서 못지않은 ‘광고 매체’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팬들은 그 캐릭터의 스토리에 몰입하면서 정서적 교류를 느끼지만, 동시에 광고 타깃으로 전환되고, 콘텐츠는 곧 브랜드 노출의 수단이 된다. 팬과 소비자의 경계는 흐려지고, 좋아한다는 감정 자체가 구매로 이어지는 구조 속에서 ‘팬덤’은 이제 ‘감정 기반 소비 집단’으로 전환된다. 이는 콘텐츠에 대한 주체적인 감상이 아니라, 유도된 감정을 마치 자발적 선택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정교한 소비 메커니즘이다.

문제는 이러한 상업화된 감정 소비 구조가 ‘생명’이라는 개념을 기술적으로 대체하거나 지워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반려견은 병에 걸리고, 늙고, 때로는 죽는다. 그 과정에서 보호자는 책임을 지고, 이별을 경험하며, 생명을 다루는 데서 오는 윤리적 감수성을 체득하게 된다. 그러나 가상의 반려견은 영원히 귀엽고, 언제나 건강하며, 불편한 현실과는 단절된 상태로 존재한다. 이러한 ‘문제없는 존재’는 정서적 피로를 줄이고 소비 만족도를 극대화하지만, 그만큼 우리는 생명에 대한 윤리적 상상력과 공감을 잃어가고 있다. 기술은 우리에게 ‘편리한 감정’을 제공하지만, 그것이 진짜 감정의 깊이를 대체할 수 있을까? 우리는 진짜를 잃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는 소비자이면서도 팬이고, 팬이면서도 마케터가 설계한 알고리즘 안에서 움직이는 데이터로 기능한다. 이러한 경계의 혼란 속에서 진짜 문제는 ‘가짜 강아지’ 자체가 아니라, 그 존재를 통해 어떤 감정 구조를 학습하고 있는가에 있다. 기술은 언제나 중립적이지 않다. 그것을 어떻게 설계하고, 무엇을 위해 사용하는가에 따라 윤리의 무게는 달라진다. ‘실재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회적 동의는 디지털 캐릭터 산업을 부흥시키고 있지만, 동시에 인간과 동물, 감정과 상품, 진정성과 기획 사이의 기준을 흐리게 만든다. 그렇기에 지금 필요한 것은 기술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이 만들어내는 감정과 서사를 어떻게 비판적으로 소비할 것인가에 대한 집단적 자각이다.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반려견을 사랑하게 된 이 시대에, 진짜 감정의 윤리란 무엇인지 다시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