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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과 기술 격차 – AI는 강아지를 이해할 수 있는가?

data-find-blog1 2025. 4. 21. 10:00

1. 펫테크의 급성장 – 반려견을 이해하는 기술인가, 데이터인가

최근 반려견을 위한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탑재된 장난감은 강아지의 행동 패턴을 학습하고, 스스로 움직이며 상호작용한다. GPS와 건강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하는 트래킹 기기는 보호자에게 반려견의 활동량, 체온, 수면 상태 등을 분석해 보여준다. 더 나아가 감정 분석 웨어러블은 꼬리 흔들림, 심박수, 안면 근육의 긴장도를 바탕으로 강아지의 ‘기분’을 측정해 알려준다. 이러한 기술은 겉보기엔 보호자와 반려견의 소통을 돕는 도구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이 기술들은 진짜 반려견을 ‘이해’하고 있는가? 아니면 데이터를 기반으로 구성된 해석에 불과한가? 반려견의 감정과 행동은 기술이 제시하는 숫자와 아이콘 안에 온전히 담길 수 없는 복합적인 존재다.
펫테크가 그 복합성을 단순화시킨다면, 우리는 반려견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적으로 해석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특히 보호자 입장에서 기술이 제공하는 수치와 분석 결과는 ‘객관적 진실’처럼 보이지만, 실제 반려견의 감정과 맥락은 언제나 그 바깥에 있다. 우리가 기술을 통해 바라보는 반려견의 모습은 종종 ‘필터링된 환상’일 수 있으며, 이는 오히려 존재로서의 반려견을 가리는 벽이 될 수도 있다.

 

2. 본능을 설계하려는 기술 – 자율성과 알고리즘의 충돌

AI 기반 장난감이나 자동 보상 시스템은 강아지가 혼자 있을 때도 지루하지 않도록 다양한 자극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런 시스템이 과도하게 발전할 경우, 반려견의 본능적 행동이 제한될 수 있다. 본능은 동물이 타고난 생물학적 리듬이며, 특정 자극에 대한 자율적 반응이다. 예를 들어, 강아지가 스스로 냄새를 따라가며 탐색하는 행위는 후각 본능에 기반한 ‘세상과의 관계 맺기’다. 또한 보호자의 얼굴 표정을 읽고 감정에 따라 옆에 앉거나 거리를 두는 반응은, 사회적 동물로서의 감정 수용 행동이다. 이런 자연스러운 본능적 반응들이 기술이 제공하는 정해진 자극에 의해 반복되거나 대체될 경우, 반려견은 점차 스스로의 환경을 ‘선택’하는 주체에서, 자극에 ‘반응’하는 객체로 전락한다.
예컨대, AI 장난감이 주도하는 놀이 구조 속에서 강아지는 탐색 대신 피드백에 반응하게 되고, 감정 분석 센서가 울리면 보호자는 반려견의 ‘불안’을 기술로 판단하게 된다. 이처럼 기술은 무의식적으로 반려견의 자율적 본능을 구조화하고 있다. 자율성과 본능이 억압된 반려견은 기능적으로는 순응할지 모르나, 심리적 풍요와 동물로서의 정체성을 점점 상실하게 될 것이다.

반려견과 기술 격차 – AI는 강아지를 이해할 수 있는가?

3. 인식 격차의 시작 – 교감 없는 기술은 무엇을 놓치는가

펫 AI 기술은 점점 더 보호자보다 ‘정확하게’ 반려견을 분석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얼굴 인식 기반 건강 예측, 울음소리 분석, 표정 감지 프로그램 등은 사람보다 빠르게 문제를 감지하고 반응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착오가 있다. 기술이 해석하는 것은 언제나 ‘데이터로 변환 가능한 부분’일 뿐, 강아지라는 존재 전체는 아니다.
기술은 반려견을 진짜로 이해할 수 있을까?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나와 너』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은 대상화된 ‘그것’이 아니라 존재와 존재 간의 직접적 관계, 즉 ‘나와 너’의 관계라고 했다. 반려견과 보호자 사이에도 이 같은 교감은 존재한다. 서로의 눈빛, 체온, 긴장감, 목소리 톤에 기반한 교감은 기술이 측정할 수 없는 차원의 정서적 흐름이다. 기술이 아무리 ‘똑똑해 보여도’, 그것은 생명 간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공명’을 가질 수 없다.
교감은 단순한 정보 교환이 아니라, 서로의 상태에 존재적으로 연결되는 경험이다. 인간과 강아지는 서로를 통해 감정 상태를 공유하고, 경험을 축적하며, 기억을 만든다. 이는 알고리즘이 흉내 낼 수 없는 ‘경험의 연속성’을 전제로 한다. 기술은 정보를 제공할 수는 있지만, 감정을 매개하거나 기억을 함께 형성하지는 못한다. 교감이 빠진 관계에서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것은 ‘돌봄의 시뮬레이션’에 불과하다.
결국 우리가 신뢰하고 있는 기술은 감정의 깊이와 맥락을 누락한 이해이며, 이로 인해 반려견의 존재는 점점 더 단순화된 데이터 패턴으로 축소될 위험에 처해 있다.
더욱이 기술 중심의 돌봄은 보호자의 감각적 직관과 책임감을 점점 둔화시키며, 반려견의 비언어적 표현을 해석하는 능력 자체를 약화시킨다. 기술은 편리하지만, 교감은 편의보다 훨씬 복잡한 감정의 언어다.

 

4. 기술의 윤리, 반려견의 권리 – 새로운 시대의 물음

인간은 기술을 설계하고, 문명을 만들며,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주체다. 원하는 앱을 고르고, 데이터를 수집하고, 필요하면 기술을 거부할 수 있다. 그러나 반려견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기술의 소비자도, 결정권자도 아닌, 단지 대상일 뿐이다. 인간에게 기술은 도구이지만, 반려견에게 기술은 주어진 환경이고 현실이다. 기술은 그들의 삶을 바꾸지만, 그 변화에 대해 스스로 말하거나 판단할 수 없다. 이 점이 인간과 동물 사이 문명적 수혜의 구조적 비대칭을 낳는다.
철학자 도나 해러웨이는 『Companion Species Manifesto』에서 인간과 동물이 서로를 통해 형성되는 공동 진화의 관계, 즉 ‘동물적 친밀성(animal intimacy)’을 제안했다. 인간은 동물을 이용하거나 대상화하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며 관계 속에서 서로를 변화시키는 존재로 이해되어야 한다.
또한 동물윤리학자 톰 리건은 ‘동물은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될 권리를 가진 존재’라고 주장하며, 감각과 기억, 고유성을 지닌 주체로서 동물을 대우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피터 싱어는 『동물 해방』에서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재는 도덕적 고려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쾌고 주의’의 입장을 펼쳤다. 반려견이 기술의 개입 아래에서 자신만의 감정과 자율성을 상실할 경우, 그것은 단지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적 침해이기도 하다.
기술이 개입할수록 ‘함께 살아간다’는 감각은 멀어지고, 반려견은 보호자와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가 아닌, 기능적 피드백의 매개체가 되어가고 있다. 기술은 반려견의 본능을 이해하지 못하며, 교감의 깊이를 측정할 수 없으며, 그들의 권리를 스스로 존중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술을 중심에 두기 전에, 존재를 마주하는 철학을 먼저 세워야 한다. 기술이 아니라, 존재로서의 반려견을 존중하는 일이야말로 이 시대 가장 필요한 질문이다. 그것은 곧 기술의 윤리이자, 반려견의 권리를 묻는 새로운 시대의 물음이 된다.
그리고 이 물음은 단지 반려동물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이 공존하는 미래 사회 전체에 던지는 철학적 질문이기도 하다. 기술은 발전할 수 있지만, 윤리는 진화하지 않으면 공백을 남긴다.